*. 大王大妃 대왕대비
"조선시대 현왕(現王)의 할머니이며 전전왕(前前王)의 왕비였던 여성
을 높여서 부르던 호칭
대비를 높여서 대왕대비라고도 했다"
太皇太后 태왕태후 - 太帝太后 태제태후
라고도 불렸다고 한다
*. 王大妃 왕대비
"조선시대 현왕 (現王) 의 어머니이며
전왕(前王)의 왕비였던 여성을 높여서 부르던 호칭”
皇太后 황태후 라고도 불렸다고 한다
*. 大妃 대비
"왕의 정실 부인 즉 왕비를 말하며 중전이라고도 한다”
王后 왕후 - 王妃 왕비
라고도 불렸다고 한다
이 호칭들의문자적의미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
*. 계집 女 녀
난자를 품고 있는 형상을 그린 자로 보기도 한다
물론 난자를 품고 씨앗을 받아들이는 형상으로도 볼 수 있겠다
(여자가) 사람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는 모습
‘계집 女 녀’ 에 대한 위의 해석은
소전에 대한 해석일 뿐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예서의 해석은
계집 女 녀
는 남자의 다리에 자신의 다리를 거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자
로 季執 계집

(季 의 고자)
벼 禾 화 + 새 隹 추 + 아들 子 자 +잡을 執 집
새 벼의 씨종자를 잡는 이
를 그려
계집
을 나타냈다고 억측해 볼 수 있겠다
286 - 1. 몸 己 기
무릎을 꿇고 앉은 사람의 모습을 그린 자라는 해석도 있으나
弓 과 거의 흡사하게 생긴 소전체를 보면
활의 모양을 그린 자라는 해석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
종족의 이름까지도 '큰 大 대 + 활 弓 궁' 으로
'편안할-떳떳할 夷 이' 를 쓴 夷族 이족에겐
활은 가히 몸과 일체였을 것이다
해서 '몸 己 기' 는 '자기' 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
지금 한자라 불리는 문자는
동이족이 만든 문자임을 말해주는 자라고 하겠다
*. 왕비 - 짝 - 태자비 妃 비
계집 女 녀 + 몸 己 기
'’왕의' 몸과 같은 여자' 혹은
‘활을 메고 있는 여자' 를 그려
'왕비 - 짝 - 태자비' 등을 나타냈다
*. 뒤 - 임금 后 후
는 오른쪽으로의 진행이 아닌 왼쪽으로의 진행을 그린 자 厂 로
厂 에 ㅡ 를 더해 커다란 이음을 나타냈고
임금의 뒤를 임금의 아내나 아들이 아닌 이가 이음을 나타냈다
고 억측해 볼 수 있겠다
즉 厂 에 ㅡ 를 더해 커다란 이음을 나타냈고
ㅁ 으로 '말한다' 를 나타내
'커다란 이음 (계승) 을 말한다' 를 나타냈다고 억측해 볼 수 있겠다
해서 后 는 임금 - 왕후 - 뒤 등을 나타낼 수 있었다
‘임금 后 후’ 와 ‘맡을 司 사’ 는
后司 처럼 좌우 대칭으로
둘을 하나 (하나로 움직여야 할 한 나라의 왕과 신하) 로 보고
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바른 것이라고 보면
后 는 ‘입 ㅁ 구’ 즉 ‘말을 시작하는’
司 는 ‘입 ㅁ 구' 즉 ‘말이 멈추는/받아들이는' 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
해서
后 는 명령을 내리는 임금-왕후를 나타냈고
司 는 직책을 맡아보다-벼슬-살피다를 나타냈다
'왕비 - 짝 - 태자비 妃 비' 와 '뒤 - 임금 后 후’ 의 문자적 의미엔
커다란 격의 차이가 없다
차이가 있다면
后 는 명령을 내리는 임금과 왕후를 나타냈었지만
'왕비 - 짝 - 태자비 妃 비' 엔 남자 임금의 뜻이 없었다
임금의 뜻이 있었다면
아마도 '여자 임금' 의 뜻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
같은 점은 문자의 의미와 만들어진 시기가 공히 모계사회였던 것
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
황제국 - 제후국 - 자주국 이냐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
호칭이 다르긴 했으나
역사적 자료를 보고 이해할 땐
호칭의 차이점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겠으나
쓸 때는 조선시대의 호칭이나 현재 교육기관이 정한 바에 따르고
과거의 호칭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